
KOSSDA에서 18년간 데이터 아키비스트로 일해온 허혜옥 연구원(아카이빙사업부 실장).
KOSSDA 서포터즈 DataBee가 허혜옥 연구원을 만나 데이터 아카이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1. KOSSDA와는 언제,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처음부터 데이터 아키비스트나 데이터 큐레이터를 꿈꾼 건 아니었어요. 인생은 때때로 우연이 길을 만듭니다.”
허혜옥 연구원이 KOSSDA에 합류한 건 2007년 1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직업으로서 ‘계획된 선택'이라기보다는 뜻밖의 경험에서 비롯된 우연과 의미의 만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 처음 맡게 된 일은 '서베이리서치센터' 조교였습니다. 그곳에서 허혜옥 연구원은 국내 대표적인 사회조사인 ’한국종합사회조사(Korean General Social Survey, KGSS)‘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설문조사와 데이터 수집이라는 세계를 가까이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구데이터가 왜 중요한가? 연구자가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그게 궁금했어요.”
졸업 즈음, 한 통의 전화가 허혜옥 연구원의 인생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재단법인 한국사회과학자료원(현 KOSSDA)에서 진행 중이던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설립 및 시범사업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죠. 이 사업은 연구데이터를 수집·보존하고 아카이빙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로, 당시에는 매우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프로젝트 책임자는 당시 재단 이사장이자 서베이리서치센터 소장이었던 석현호 교수님이었고, 제안 덕분에 허혜옥 연구원은 2005년 12월, 본격적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왜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가? 공유를 왜 해야하는가를 고민해 보게 되었고요… 공익적인 성격의 이 사업에 점점 끌리게 됐어요. 보람도 있었고요.”
그렇게 2007년, KOSSDA의 '정식 구성원'이 되었고, 이 일이 직업이자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Q2. KOSSDA와의 협업이나 데이터 기여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오래 일했기에, 그만큼 인상 깊은 기억도 많아요. 하나만 꼽긴 어렵죠.”
허혜옥 연구원은 KOSSDA에서 18년간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대외협력과 교육 업무를 담당했고, 2011년부터는 데이터 아카이빙과 큐레이션을 담당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시기로는 기관과 개인연구자들에게 데이터를 기탁받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일이 많았던 초창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한여름에 대학 캠퍼스로 직접 찾아가 연구자분을 뵈면, 늘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내가 왜 이 데이터를 KOSSDA에 맡겨야 하죠?’ 그 질문은 원론적이어서,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스스로 되묻게 만들었죠.”
당시에는 데이터를 기탁받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어떤 기관장들은 연구데이터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오히려 이 사업을 지지하며 손을 내밀어준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 역시 과거에 연구데이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공유'라는 가치에 공감한 것이죠.
“그렇게 하나씩 문을 두드리고 뜻을 모으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은 반대로 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먼저 기탁을 요청해오는 기관들도 많아졌어요. 시간이 흐르며 사업환경이 굉장히 변했다는 걸 느껴요.”
또 다른 기억으로는, 정보가 거의 없는 데이터 파일을 하나의 정돈된 공개용 자료로 만들어냈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문서나 설문개요가 누락된 데이터를 두고, 관련 논문을 뒤지고 연구자에게 연락하며 하나하나 메타데이터를 구축해 그 모든 것이 마침내 문서화되어 업로드되는 순간, 짙은 성취감이 남았다고 합니다. 특히 아시아 7개국 데이터를 통합했던 프로젝트를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국제 협업 사례로 꼽았습니다.
“데이터 통합 후에는 컨퍼런스도 열리고, 책도 출간됐어요.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운 게 많았죠.”
마지막으로 허혜옥 연구원이 조용히 꺼낸 기억 하나는 2년 전 KOSSDA 3.0 출범을 앞두고, 구성원들과 함께 영상기념식의 동영상🎥을 시청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놀림도 받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이 일을 계속해온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실감했어요.”
Q3. 연구 데이터를 아카이빙하거나 공개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나 보람을 느끼셨나요?
“보람은 많지만… 사실, 늘 고민도 같이 있었어요. 내가 정말 이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인가?”
데이터 큐레이션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18년을 일했지만, 허혜옥 연구원은 종종 자기 확신의 벽 앞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국내에는 '데이터 큐레이터'나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외에는 아카이브 직군이 전문화되어 있고, 교육 과정도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기반이 없었죠. 처음엔 ‘이걸 어디서 배워야 하지?’부터가 막막했어요.”
허혜옥 연구원은 해외 아카이브의 매뉴얼, 가이드라인, 논문을 찾아 공부하며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자리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외로움 그리고 기준이 필요하다는 사명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허혜옥 연구원에게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KOSSDA 초대 원장이셨던 구혜란 박사님은 허혜옥 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실무자들이 '아키비스트'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준 스승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흔들릴 때, ‘당신들은 잘하고 있어요. 이런 실무 경험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어요. 당신들이 전문가입니다’라고 늘 응원해주셨거든요. 그런 말들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못 왔을 수도 있어요.”
KOSSDA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석현호 교수님, 구혜란 박사님, 신영란 사회과학도서관 관장님 등은 아카이브를 설립해 토대를 닦아 이 분야의 후속 세대가 설 수 있도록 선구자 역할을 해온 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흐름을 이어온 허혜옥 연구원은 스스로를 1.5세대라 칭하며, 앞으로 이 길을 선택할 2세대 아키비스트들이 제도적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데이터 아카이빙은 단순한 파일 정리가 아니에요. 정책 개발부터 시스템 구축까지 다양한 전문 역량이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과정이나 커리큘럼이 부족해요. 이 분야가 하나의 전문 직업군으로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잘 하고 있나'라는 고민을 품고도, 묵묵히 길을 만들고 후배들이 딛고 설 수 있는 자리를 닦아온 허혜옥 연구원은 그 과정을 '고민'이라기보다는 '역할'로 받아들이며 오늘도 아카이빙 인프라의 빈 곳을 어떻게 채워갈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Q4. 사회과학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회과학 데이터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캡처할 수 없는 순간들을 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록하고, 공유하는 게 더더욱 중요하죠.”
허혜옥 연구원은 '사회과학 데이터'를 단순한 숫자나 파일이 아니라, '시대의 얼굴을 담은 기록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연과학의 데이터는 실험과 반복을 통해 재현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점의 사회, 사람, 문화, 제도,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데이터는 '한 번뿐인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60~70년대 출산력 조사는 그 시기의 가족 구조와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에요. 요즘 청년들의 가치관 조사는 또 2020년대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스냅샷이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들 수가 없어요. 그게 사회과학 데이터의 특징이죠.”
그렇기에 데이터를 단순히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재이용할 수 있도록 아카이빙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만 개인의 연구를 넘어, 사회 전체의 지식 자산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데이터 공유는 연구자 개인에게도 점점 중요한 성과로 인정받는 흐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과로 인정받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요. 특히 데이터를 기탁하면 인용되기 때문에, 그 데이터의 ‘저자’로 기록될 수 있죠. 연구자 개인에게는 성과의 확장이자, 사회적으로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활용되어 더 많은 연구를 낳는 순환 구조가 생깁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도, 한 번의 조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데이터가 여러 번 쓰일 수 있다면 그건 새로운 가치를 계속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저는 아카이브의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데이터는 한 시대의 숨결을 담은 기록이고, 그 기록이 다시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일. 허혜옥 연구원이 하는 일은 그런 사회적 순환을 설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Q5. 유튜버들의 '유튭각'처럼, '논문각!' 이라는 느낌, 언제 오시나요?
“유튜버들이 ‘이건 유튭각이야!’ 하듯이, 저도 일하다 보면 ‘이거 논문각인데…?’ 싶은 순간이 있어요.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거죠. 하하.”
허혜옥 연구원은 스스로를 '논문 중심의 연구자'라고 보진 않지만, KOSSDA에서 오랫동안 데이터를 다루며 쌓아온 실무 경험이 쌓여 언젠가는 정리해서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데이터를 수집할 때, 가공‧처리할 때, 보존할 때, 연구서비스를 개발할 때… 단계마다 겪는 고충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그걸 그냥 ‘일’로만 넘겼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걸 잘 정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논문각'이 찾아왔고, KOSSDA에서 직접 수행하고 고민했던 과제를 토대로 2025년 한국문헌정보학회지에 연구데이터 큐레이션 관련 논문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큐레이션을 주제로 한 ‘우리의 고민’을 정리해서 논문으로 냈다는 게… 뿌듯했어요. 이건 진짜 우리가 해온 일이니까요.”
허혜옥 연구원은 실무에서 마주하는 반복적인 문제들이 단지 귀찮음이 아니라,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주제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의식이 명확하고, 실제 현장에서의 맥락도 풍부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논문 주제가 된다는 것이죠.
“논문각은 늘 와요. 근데 그걸 글로 옮기기까지의 길이 멀 뿐이죠.”
Q6. 사회과학 연구에서 ChatGPT나 AI 도구를 사용할 때, 죄책감을 느끼시나요? 아니면 '이게 연구 효율화다'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꽤 긍정적인 편이에요. 친구처럼 쓰고 있어요. 말 잘 통하는 친구요. 처음엔 무슨 기능이 있나 궁금했는데, 점점 쓰면서 이거 진짜 생각보다 괜찮네, 했어요. 주제 분류하거나 키워드를 정리할 때, 이미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는데 이를 빠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정말 요긴하더라고요.”
허혜옥 연구원은 AI가 사람 대신 연구를 해주는 건 아니지만, 기초적인 탐색을 빠르게 해주고, 막혔던 아이디어를 확장시켜주는 데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동료, 비서, 친구라는 표현을 쓰며, 그 인터페이스의 친근함과 활용성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허혜옥 연구원은 단호하게 한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AI가 제안하는 내용이 항상 정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연구자라면 책임 있는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Q7.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돗자리 깔고, 그냥 가만히 누워 있고 싶어요. 조용한 곳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요. ... 집에는 아이들도 있고 부모님도 계시고, 밀도가 너무 높아요. 아침 일찍 나와서 밤 늦게 들어가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적막한 공간이 간절해질 때가 있어요.”
허혜옥 연구원은 문득 '만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얼마 전, 손으로 만두를 빚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실제로, 어느 날은 친정에 가서 오래간만에 직접 만두를 빚었다고 합니다. 조물조물 반죽을 만지며 수다를 떨고, 결과물이 하나씩 쌓여가는 그 시간은 복잡한 일상 속에서 마주한 짧은 고요함이자 회복의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결혼 전에는 송편도, 만두도 손으로 직접 빚는 걸 참 좋아했어요. 반복되는 단순한 손놀림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있는 시간이… 저한테는 큰 위로였거든요."
Q8. 책상 위 필수 아이템 3가지는?
“커피, 샤프, 모니터요. 이 세 가지가 없으면 하루가 안 굴러가요.”
☕ 커피: 하루의 '포션'
“출근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거예요. 캡슐 커피머신에 익숙한 손길로 캡슐을 끼우고, 따뜻한 커피 향이 퍼질 때 ‘이제 하루가 시작된다’는 실감이 나요. 어떤 날은 이 한 잔이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포션' 같기도 하죠.”
✍ 샤프: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
“복잡한 업무일수록 메모가 필수예요. 생각이 머리 안에만 있으면 어지럽기만 한데, 글로 쓰면 정리가 되거든요. 머릿속에서 겹치고 부딪히는 것들을 샤프 하나로 차곡차곡 내려놓으면 비로소 눈앞에 질서가 생겨요.”
🖥 모니터: 큐레이터의 현실
“모니터는… 어쩔 수 없죠. 하루 종일 PC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공간이에요.”
Q9. 이론 먼저 정리 후 분석? vs 데이터 먼저 보고 의미 부여?
“음…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전자! 저는 ‘질서 속에서 안심하는 타입’이에요.”
허혜옥 연구원은 정리를 좋아하고 혼돈 속에서도 패턴을 찾으려는 분입니다. 그래서 연구데이터를 다룰 때도 '일단 구조부터 잡고 들어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습니다. 단, 실제로 다루는 데이터는 늘 불완전한 상태라는 게 포인트입니다.
“현실의 데이터는요… 정리가 많이 필요해요! 변수 설명 빠져 있기도 하고, 조사 개요가 없어서 찾아야 하고, 필수 파일이 누락된 경우도 있죠. 그래서 들어오면 일단 ‘이 안에서 질서를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해요.”
아카이빙은 불완전한 데이터 파일들을 모아, 메타데이터를 정리하고, 변수명을 붙이고, 설명을 다는… 즉, 연구자들이 무리 없이 재이용할 수 있는 이상적인 데이터 상태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FAIR 원칙’이라고 부르는데요. 데이터를 찾기 쉽고(Findable), 접근 가능하고(Accessible), 상호운용 가능하며(Interoperable), 재사용 가능해야(Reusable) 한다는 원칙이에요. 그 이상적인 조건을 충족시키고자 하나하나 맞춰가는 게 제 일이죠!”
Q10. '코스다'로 삼행시!
코 –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스 – 스트레스를 날리고 데이터를 보면
다 – 다시 논문각이 보인다!
인터뷰 내내 진지했던 허혜옥 연구원의 재치가 돋보인 순간이었습니다. 😄
🎁 마지막으로, 후배 연구자들에게 한마디
“데이터를 너무 좁게 보지 마세요. 기록은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어요. ... 데이터 매니지먼트는 결국 연구의 일환이에요. 처음부터 생각하고 시작하면 훨씬 수월합니다.”
연구 방법도, 데이터의 형태도 다양해졌기에 연구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정리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인터뷰 제작 | KOSSDA 서포터즈 1기 이규리, 하민지
📌 인터뷰 일시 | 2025년 6월 4일 (수) 오후 8시
📌 인터뷰 장소 | 서울 연남동 카페
📢이 글은 뉴스레터 게재를 위해 DataBee 인터뷰 원문을 편집·재구성했습니다.




KOSSDA에서 18년간 데이터 아키비스트로 일해온 허혜옥 연구원(아카이빙사업부 실장).
KOSSDA 서포터즈 DataBee가 허혜옥 연구원을 만나 데이터 아카이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1. KOSSDA와는 언제, 어떤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처음부터 데이터 아키비스트나 데이터 큐레이터를 꿈꾼 건 아니었어요. 인생은 때때로 우연이 길을 만듭니다.”
허혜옥 연구원이 KOSSDA에 합류한 건 2007년 1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입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직업으로서 ‘계획된 선택'이라기보다는 뜻밖의 경험에서 비롯된 우연과 의미의 만남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뒤 처음 맡게 된 일은 '서베이리서치센터' 조교였습니다. 그곳에서 허혜옥 연구원은 국내 대표적인 사회조사인 ’한국종합사회조사(Korean General Social Survey, KGSS)‘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설문조사와 데이터 수집이라는 세계를 가까이 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구데이터가 왜 중요한가? 연구자가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그게 궁금했어요.”
졸업 즈음, 한 통의 전화가 허혜옥 연구원의 인생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재단법인 한국사회과학자료원(현 KOSSDA)에서 진행 중이던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설립 및 시범사업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온 것이죠. 이 사업은 연구데이터를 수집·보존하고 아카이빙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로, 당시에는 매우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프로젝트 책임자는 당시 재단 이사장이자 서베이리서치센터 소장이었던 석현호 교수님이었고, 제안 덕분에 허혜옥 연구원은 2005년 12월, 본격적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왜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가? 공유를 왜 해야하는가를 고민해 보게 되었고요… 공익적인 성격의 이 사업에 점점 끌리게 됐어요. 보람도 있었고요.”
그렇게 2007년, KOSSDA의 '정식 구성원'이 되었고, 이 일이 직업이자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Q2. KOSSDA와의 협업이나 데이터 기여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오래 일했기에, 그만큼 인상 깊은 기억도 많아요. 하나만 꼽긴 어렵죠.”
허혜옥 연구원은 KOSSDA에서 18년간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대외협력과 교육 업무를 담당했고, 2011년부터는 데이터 아카이빙과 큐레이션을 담당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시기로는 기관과 개인연구자들에게 데이터를 기탁받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일이 많았던 초창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한여름에 대학 캠퍼스로 직접 찾아가 연구자분을 뵈면, 늘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내가 왜 이 데이터를 KOSSDA에 맡겨야 하죠?’ 그 질문은 원론적이어서,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스스로 되묻게 만들었죠.”
당시에는 데이터를 기탁받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어떤 기관장들은 연구데이터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오히려 이 사업을 지지하며 손을 내밀어준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 역시 과거에 연구데이터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공유'라는 가치에 공감한 것이죠.
“그렇게 하나씩 문을 두드리고 뜻을 모으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은 반대로 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먼저 기탁을 요청해오는 기관들도 많아졌어요. 시간이 흐르며 사업환경이 굉장히 변했다는 걸 느껴요.”
또 다른 기억으로는, 정보가 거의 없는 데이터 파일을 하나의 정돈된 공개용 자료로 만들어냈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문서나 설문개요가 누락된 데이터를 두고, 관련 논문을 뒤지고 연구자에게 연락하며 하나하나 메타데이터를 구축해 그 모든 것이 마침내 문서화되어 업로드되는 순간, 짙은 성취감이 남았다고 합니다. 특히 아시아 7개국 데이터를 통합했던 프로젝트를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국제 협업 사례로 꼽았습니다.
“데이터 통합 후에는 컨퍼런스도 열리고, 책도 출간됐어요.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운 게 많았죠.”
마지막으로 허혜옥 연구원이 조용히 꺼낸 기억 하나는 2년 전 KOSSDA 3.0 출범을 앞두고, 구성원들과 함께 영상기념식의 동영상🎥을 시청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놀림도 받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이 일을 계속해온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실감했어요.”
Q3. 연구 데이터를 아카이빙하거나 공개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나 보람을 느끼셨나요?
“보람은 많지만… 사실, 늘 고민도 같이 있었어요. 내가 정말 이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인가?”
데이터 큐레이션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18년을 일했지만, 허혜옥 연구원은 종종 자기 확신의 벽 앞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국내에는 '데이터 큐레이터'나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해외에는 아카이브 직군이 전문화되어 있고, 교육 과정도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기반이 없었죠. 처음엔 ‘이걸 어디서 배워야 하지?’부터가 막막했어요.”
허혜옥 연구원은 해외 아카이브의 매뉴얼, 가이드라인, 논문을 찾아 공부하며 무언가를 처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자리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외로움 그리고 기준이 필요하다는 사명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허혜옥 연구원에게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KOSSDA 초대 원장이셨던 구혜란 박사님은 허혜옥 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실무자들이 '아키비스트'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준 스승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흔들릴 때, ‘당신들은 잘하고 있어요. 이런 실무 경험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어요. 당신들이 전문가입니다’라고 늘 응원해주셨거든요. 그런 말들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못 왔을 수도 있어요.”
KOSSDA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석현호 교수님, 구혜란 박사님, 신영란 사회과학도서관 관장님 등은 아카이브를 설립해 토대를 닦아 이 분야의 후속 세대가 설 수 있도록 선구자 역할을 해온 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흐름을 이어온 허혜옥 연구원은 스스로를 1.5세대라 칭하며, 앞으로 이 길을 선택할 2세대 아키비스트들이 제도적 기반 위에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데이터 아카이빙은 단순한 파일 정리가 아니에요. 정책 개발부터 시스템 구축까지 다양한 전문 역량이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교육과정이나 커리큘럼이 부족해요. 이 분야가 하나의 전문 직업군으로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잘 하고 있나'라는 고민을 품고도, 묵묵히 길을 만들고 후배들이 딛고 설 수 있는 자리를 닦아온 허혜옥 연구원은 그 과정을 '고민'이라기보다는 '역할'로 받아들이며 오늘도 아카이빙 인프라의 빈 곳을 어떻게 채워갈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Q4. 사회과학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회과학 데이터는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캡처할 수 없는 순간들을 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기록하고, 공유하는 게 더더욱 중요하죠.”
허혜옥 연구원은 '사회과학 데이터'를 단순한 숫자나 파일이 아니라, '시대의 얼굴을 담은 기록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연과학의 데이터는 실험과 반복을 통해 재현할 수 있지만, 사회과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시점의 사회, 사람, 문화, 제도,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데이터는 '한 번뿐인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960~70년대 출산력 조사는 그 시기의 가족 구조와 가족의 삶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에요. 요즘 청년들의 가치관 조사는 또 2020년대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스냅샷이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들 수가 없어요. 그게 사회과학 데이터의 특징이죠.”
그렇기에 데이터를 단순히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고 재이용할 수 있도록 아카이빙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만 개인의 연구를 넘어, 사회 전체의 지식 자산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데이터 공유는 연구자 개인에게도 점점 중요한 성과로 인정받는 흐름이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성과로 인정받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어요. 특히 데이터를 기탁하면 인용되기 때문에, 그 데이터의 ‘저자’로 기록될 수 있죠. 연구자 개인에게는 성과의 확장이자, 사회적으로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활용되어 더 많은 연구를 낳는 순환 구조가 생깁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도, 한 번의 조사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데이터가 여러 번 쓰일 수 있다면 그건 새로운 가치를 계속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저는 아카이브의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데이터는 한 시대의 숨결을 담은 기록이고, 그 기록이 다시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도록 이어주는 일. 허혜옥 연구원이 하는 일은 그런 사회적 순환을 설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Q5. 유튜버들의 '유튭각'처럼, '논문각!' 이라는 느낌, 언제 오시나요?
“유튜버들이 ‘이건 유튭각이야!’ 하듯이, 저도 일하다 보면 ‘이거 논문각인데…?’ 싶은 순간이 있어요.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거죠. 하하.”
허혜옥 연구원은 스스로를 '논문 중심의 연구자'라고 보진 않지만, KOSSDA에서 오랫동안 데이터를 다루며 쌓아온 실무 경험이 쌓여 언젠가는 정리해서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데이터를 수집할 때, 가공‧처리할 때, 보존할 때, 연구서비스를 개발할 때… 단계마다 겪는 고충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그걸 그냥 ‘일’로만 넘겼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걸 잘 정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논문각'이 찾아왔고, KOSSDA에서 직접 수행하고 고민했던 과제를 토대로 2025년 한국문헌정보학회지에 연구데이터 큐레이션 관련 논문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큐레이션을 주제로 한 ‘우리의 고민’을 정리해서 논문으로 냈다는 게… 뿌듯했어요. 이건 진짜 우리가 해온 일이니까요.”
허혜옥 연구원은 실무에서 마주하는 반복적인 문제들이 단지 귀찮음이 아니라,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주제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문제의식이 명확하고, 실제 현장에서의 맥락도 풍부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논문 주제가 된다는 것이죠.
“논문각은 늘 와요. 근데 그걸 글로 옮기기까지의 길이 멀 뿐이죠.”
Q6. 사회과학 연구에서 ChatGPT나 AI 도구를 사용할 때, 죄책감을 느끼시나요? 아니면 '이게 연구 효율화다'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꽤 긍정적인 편이에요. 친구처럼 쓰고 있어요. 말 잘 통하는 친구요. 처음엔 무슨 기능이 있나 궁금했는데, 점점 쓰면서 이거 진짜 생각보다 괜찮네, 했어요. 주제 분류하거나 키워드를 정리할 때, 이미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는데 이를 빠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정말 요긴하더라고요.”
허혜옥 연구원은 AI가 사람 대신 연구를 해주는 건 아니지만, 기초적인 탐색을 빠르게 해주고, 막혔던 아이디어를 확장시켜주는 데는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동료, 비서, 친구라는 표현을 쓰며, 그 인터페이스의 친근함과 활용성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허혜옥 연구원은 단호하게 한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AI가 제안하는 내용이 항상 정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연구자라면 책임 있는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기본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Q7.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무엇인가요?
“돗자리 깔고, 그냥 가만히 누워 있고 싶어요. 조용한 곳에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요. ... 집에는 아이들도 있고 부모님도 계시고, 밀도가 너무 높아요. 아침 일찍 나와서 밤 늦게 들어가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적막한 공간이 간절해질 때가 있어요.”
허혜옥 연구원은 문득 '만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얼마 전, 손으로 만두를 빚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실제로, 어느 날은 친정에 가서 오래간만에 직접 만두를 빚었다고 합니다. 조물조물 반죽을 만지며 수다를 떨고, 결과물이 하나씩 쌓여가는 그 시간은 복잡한 일상 속에서 마주한 짧은 고요함이자 회복의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결혼 전에는 송편도, 만두도 손으로 직접 빚는 걸 참 좋아했어요. 반복되는 단순한 손놀림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있는 시간이… 저한테는 큰 위로였거든요."
Q8. 책상 위 필수 아이템 3가지는?
“커피, 샤프, 모니터요. 이 세 가지가 없으면 하루가 안 굴러가요.”
☕ 커피: 하루의 '포션'
“출근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거예요. 캡슐 커피머신에 익숙한 손길로 캡슐을 끼우고, 따뜻한 커피 향이 퍼질 때 ‘이제 하루가 시작된다’는 실감이 나요. 어떤 날은 이 한 잔이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포션' 같기도 하죠.”
✍ 샤프: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
“복잡한 업무일수록 메모가 필수예요. 생각이 머리 안에만 있으면 어지럽기만 한데, 글로 쓰면 정리가 되거든요. 머릿속에서 겹치고 부딪히는 것들을 샤프 하나로 차곡차곡 내려놓으면 비로소 눈앞에 질서가 생겨요.”
🖥 모니터: 큐레이터의 현실
“모니터는… 어쩔 수 없죠. 하루 종일 PC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공간이에요.”
Q9. 이론 먼저 정리 후 분석? vs 데이터 먼저 보고 의미 부여?
“음…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전자! 저는 ‘질서 속에서 안심하는 타입’이에요.”
허혜옥 연구원은 정리를 좋아하고 혼돈 속에서도 패턴을 찾으려는 분입니다. 그래서 연구데이터를 다룰 때도 '일단 구조부터 잡고 들어가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습니다. 단, 실제로 다루는 데이터는 늘 불완전한 상태라는 게 포인트입니다.
“현실의 데이터는요… 정리가 많이 필요해요! 변수 설명 빠져 있기도 하고, 조사 개요가 없어서 찾아야 하고, 필수 파일이 누락된 경우도 있죠. 그래서 들어오면 일단 ‘이 안에서 질서를 찾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해요.”
아카이빙은 불완전한 데이터 파일들을 모아, 메타데이터를 정리하고, 변수명을 붙이고, 설명을 다는… 즉, 연구자들이 무리 없이 재이용할 수 있는 이상적인 데이터 상태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FAIR 원칙’이라고 부르는데요. 데이터를 찾기 쉽고(Findable), 접근 가능하고(Accessible), 상호운용 가능하며(Interoperable), 재사용 가능해야(Reusable) 한다는 원칙이에요. 그 이상적인 조건을 충족시키고자 하나하나 맞춰가는 게 제 일이죠!”
Q10. '코스다'로 삼행시!
코 –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스 – 스트레스를 날리고 데이터를 보면
다 – 다시 논문각이 보인다!
인터뷰 내내 진지했던 허혜옥 연구원의 재치가 돋보인 순간이었습니다. 😄
🎁 마지막으로, 후배 연구자들에게 한마디
“데이터를 너무 좁게 보지 마세요. 기록은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어요. ... 데이터 매니지먼트는 결국 연구의 일환이에요. 처음부터 생각하고 시작하면 훨씬 수월합니다.”
연구 방법도, 데이터의 형태도 다양해졌기에 연구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정리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 인터뷰 제작 | KOSSDA 서포터즈 1기 이규리, 하민지
📌 인터뷰 일시 | 2025년 6월 4일 (수) 오후 8시
📌 인터뷰 장소 | 서울 연남동 카페
📢이 글은 뉴스레터 게재를 위해 DataBee 인터뷰 원문을 편집·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