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Essay]우리에게는 번영의 사회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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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미국사회학회의 공공사회학 매거진 contexts에 실린 "we need a sociology of flourishing"의 번역입니다. 


사회학이 학문 분야로 정착한 지 180년이 지난 오늘날, 사회학자는 사회문제 연구의 전문가로 자리를 잡았다. 사회학자들은 이제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장애인차별의 명시적 그리고 암묵적 기제를 매우 예리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안녕과 번영 social well-being and flourishing을 설명하기 위한 사회학의 역량은 무디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도구를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많은 학문 분야에서는 이미 안녕과 번영에 관한 여러 중요한 질문에 답하려 노력하고 있다. 안녕 well-being이란 무엇일까? 안녕을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까? 지속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 있는 세부 분야 중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긍정심리학으로, 개인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성장하는지에 관한 이해를 명시적 초점으로 삼고 있다. 다른 학문 분야도 안녕을 연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일부 예를 들어보자면 교육학자들은 어떻게 치유를 촉진할 수 있는지, 생태학자들은 어떻게 숲을 재생할 수 있는지, 경제학자들은 행복의 경제학을 연구하고 있다.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윌리엄 T. 그랜트 재단을 포함한 여러 연구자금 지원 기관은 이러한 전환을 지원해 왔다.


안녕은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은 이 흐름을 따라잡고 있을까?


분명히 말하자면 안녕을 연구해온 사회학자들은 있어 왔다. 1940년대에 세인트 클레어 드레이크 St. Clair Drake와 호레이스 R. 케이턴 Horace R. Cayton은 "삶을 지탱하는 축"을 연구했는데, 여기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신을 위해 봉사하기, 성취하기, 흑인의 집단적 및 개인적 성공을 촉진하기 등이 포함되었다. 1970년대에 아론 안토노프스키 Aaron Antonovsky[질병의 원인 대신—역자] 인류의 건강을 지지하는 요인에 대한 연구인 "건강생성론 salutogenesis"을 소개했다. 2010년대에 에릭 라이트 Erik Wright리얼 유토피아를 연구했다[국역본—역자]. 더욱 최근에는 코리 키스 Corey Keyes정신적 번영의 윤곽을 밝혔고, 미셸 라몽 Michèle Lamont서로를 인정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 주었으며, 로버트 스태빈스 Robert Stebbins삶을 살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을 추구하는 방법을 보여주었고, 로렐 웨스트브룩 Laurel Westbrook과 스테프 슈스터 stef shuster는 나아가 소외된 정체성을 체화하며 따라오는 즐거움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 분야 수준에서 사회학은 다른 분야에서 안녕 연구에 쏟는 지적 에너지의 파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번영 연구에 전념하는 학술적 논의가 유의미한 임계점을 넘어서 세부 전문 분야로 성장했다. 사회학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 점은 지난 20년 간 미국 사회학의 주요 학술지인 Social Problems,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Social Force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를 둘러보면 알 수 있다. 흑인과 관련된 "안녕" 언급의 90%는 사회구조가 흑인의 안녕을 어떻게 저해하는지 또는 흑인 공동체의 곤궁 ill-being에 대한 기술이다. 이러한 연구는 안녕의 존재보다는 부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우리가 하는 노력이 사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는 데는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회문제를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기제를 탐구하기보다는 그 문제를 연구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 같다.


안녕에 관한 연구에서 우리 사회학자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것은 우려스럽다. 왜냐하면 사회학은 이 분야를 도울 수 있는 독특하고 중요한 도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사회학은 불평등과 사회문제를 연구하면서 발전시킨 정교하고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둘째, 우리는 미시·중위·거시 수준의 사회적 과정을 이론화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결론은 간단하다. 사회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론적·방법론적 엄밀성을 추구해 안녕에 관한 학문적 대화에 기여할 수 있다.


번영의 사회학이라는 야심찬 기획은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가질까? 우리는 이러한 연구가 단순히 쇠퇴나 곤궁의 사회학을 정반대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곤궁을 야기하는 기제를 이해한다는 것이 안녕을 증진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학이 번영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전략을 제안한다. 다른 질문을 던지고, 안녕의 중심지 hotspots를 연구하며, 역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다른 질문을 던지자 : 만약 우리가 불평등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불평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번영을 이해하려면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불평등은 어떻게 발생하는가?”라는 질문 대신에 “사회평등은 어떻게 발생하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대신에 “안녕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다른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종류의 발견을 향해 이론적·경험적 탐구를 개방할 수 있다.

  • 안녕의 중심지를 연구하자 : 번영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번영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장소를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연구 경험을 사례로 들어보겠다. 올드리지-레벨레스의 연구는 사회적 상승 이동성을 촉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에서 성장하는 저소득층의 일상적 경험을 탐구한다. 머피의 연구는 흑인들이 보람 있고, 만족스럽고, 존엄성을 가진 지역과 생애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실천을 탐구한다.

  • 역설을 받아들이자 : 부와 혜택이 반드시 행복을 촉진하지 않듯이 가난과 손해가 안녕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쇠약과 고통에 대한 최고의 사회학 연구는 역설을 받아들이며, 이러한 역설은 우리의 사회적 세계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역설은 불평등과 곤궁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안녕의 핵심이기도 하다. 양쪽 모두에 독특하고 복잡한 쟁점이 있다. 우리는 둘 모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안녕의 중심지를 연구하며, 역설을 받아들이자는 초대이다. 함께 하자. 번영의 사회학을 위한 많은 기회가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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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올드리지-레벨레스 Trevor Auldridge-Reveles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 캠퍼스 사회학과 대학원생입니다. 그는 미국 시골 지역 청소년의 안녕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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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우스 마일스 머피 Demetrius Miles Murphy는  보스턴 칼리지의 사회학과와 아프리카 및 아프리카계 디아스포라학 조교수입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 사는 흑인의 안녕을 연구합니다.

- 참고 : 두 저자 모두 이 연구에 동등하게 기여했습니다.

📝번역: 이지원(뉴욕주립 올버니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eg1.jiw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