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사회과학 연구자에게 ‘기타(Other)’는 코딩하기 번거로운 잔여 범주이거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미미한 수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라는 이 건조한 지시어는 남성/여성, 기혼/미혼이라는 견고한 객관식 성벽을 비집고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해방구다.
우리는 강의실에서 타당도와 신뢰도, 그리고 표본의 대표성이야말로 양적 연구의 생명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성소수자와 같이 숨겨진 모집단을 마주한 현장에서 교과서의 매끈한 방법론은 종종 길을 잃는다. 설문 문항이 포착하지 못한 삶은 데이터로 변환되지 못한 채 증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방법론의 실패가 아니라, 데이터가 행사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동명의 책 『기타,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Other, Please Specify)』를 엮은 사회학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통계의 퀴어링(Queering)을 제안한다. 통계의 퀴어링은 성소수자를 단순히 연구 표본에 끼워 넣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주체를 유동적인 것으로 보는 퀴어 이론의 통찰을, 범주를 명확히 해야 하는 조사 방법과 엮어내는 복잡하고 필연적인 작업”1)이다. 즉, 우리가 배운 사회과학의 도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도구가 놓치고 있던 ‘유동적인 삶’을 포착하도록 도구를 다시 벼리는 인식론적 도전이다.
‘정상성’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데이터
그렇다면 이 작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흔히 퀴어 연구는 질적 연구의 전유물로 여겨지나, 역설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균열은 가장 ‘딱딱한’ 숫자들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심리학자 에블린 후커는 당대 가장 권위 있는 심리 검사법을 역이용했다. 그녀는 전문가들에게 피험자의 성적 지향을 가린 채 분석하게 했다. 당시로서는 놀랍게도 전문가들조차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구분하지 못했다. 동성애자의 정신적 문제는 병리가 아닌 사회적 낙인 때문임이 ‘객관적 수치’로 입증된 순간이었다. 그녀의 데이터는 훗날 미국 정신의학회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앨프리드 킨제이의 접근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물학자였던 그는 도덕적 판단 대신 곤충을 분류하듯 인간의 성 행동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1만 명 이상에게 수백 개의 질문을 던져 섹슈얼리티가 이분법이 아닌 0에서 6까지의 연속적 스펙트럼 위에 존재함을 시각화했다. 그의 보고서는 ‘비정상’으로 치부되던 욕망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폭로하며 정상성의 기준을 뒤흔들었다. 이처럼 ‘통계의 퀴어링’은 시혜적으로 보기를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다. 주류 방법론이 은폐해 온 편견을 가장 엄밀한 연구 설계로 타격하는 작업이다.
데이터가 없으면 정책도 없다
한국의 국가 승인 통계에서 성소수자는 ‘0명’이다. 성소수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국가가 세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전국의 개인 및 가구 대상 국가 승인 통계 129건 중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묻는 조사는 전무했다. 특정 인구의 누락은 단순한 정보 부재를 넘어, ‘데이터가 없으니 문제가 없고, 문제가 없으니 정책도 필요 없다’는 정책적 삭제의 악순환을 낳는다.
이러한 통계적 삭제는 ‘증거 기반 정책(Evidence-based Policy)’의 경로를 왜곡한다. 분모가 오직 이성애자/시스젠더로만 상정된 데이터 위에서는 아무리 합리적인 정책도 이성애 규범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성소수자의 빈곤, 노동, 건강 등 삶의 조건이 파악되지 않는 한, 관련 법제도는 영원히 ‘근거 부족’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
지난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통계청 등 정부 부처에 관련 항목 신설을 권고했으나, 정부는 ‘사회적 합의’나 ‘조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2) 우리가 주저하는 사이 국제사회는 이미 성소수자를 데이터로 호명하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은 국가 단위 조사에서 성소수자 문항을 필수적으로 포함한다. 특히 영국과 캐나다는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 국민에게 성별정체성을 묻기 시작했고3), 대만은 만 명이 넘는 대규모 성소수자 생활실태조사를 정부 차원에서 실시해 정책 근거를 마련했다.4) 다소 늦었지만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가 올해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거하는 동성 커플을 포함하도록 한 결정은 반가운 균열이다.5)
성소수자는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 연구는 불모지를 개척한 연구자들과 기꺼이 입을 연 응답자들이 쌓아 올린 기록이다. 2004년 <한국 레즈비언 인권 실태조사(n=561)>와 2006년 <성전환자 인권 실태조사(n=116)> 등 소규모 커뮤니티 조사에서 시작된 흐름은, 2014년 국가인권위 실태조사(n=1,148)와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n=3,159)>를 기점으로 천 단위 표본을 확보했다. 이후 2016년 <한국 성인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 건강 연구(n=2,341)>, 2021년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n=3,911)>, 2025년 <성소수자의 노동권 및 차별에 관한 연구(n=2,639)> 등 다양한 주제로 수행된 최근 연구들은 이들이 더 이상 ‘측정 불가능한’ 소수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의 대상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이전까지 국가데이터처을 비롯한 정부 기관은 성소수자 관련 항목 신설을 거부하며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민감 정보’라 문항에 포함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숨겨 ‘과소 표집’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실제 조사 현장에서 내가 목격한 풍경은 정반대다. 성소수자들은 숨거나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처럼 보였다.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학계와 언론은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를 모았습니까?” 이 질문에는 한국 사회에 퀴어가 극소수일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다. 그러나 한국 인구의 약 5%가 성소수자라는 최근 추정치를 대입해 보면6), 우리 사회에는 광역시 하나에 맞먹는 약 250만 명의 성소수자가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숫자를 직시해야 한다. 이들은 이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사회와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준비되지 않은 건 그들의 ‘입’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담을 그릇을 마련하지 못한 우리의 ‘설문지’일 뿐이다. 안전한 공론장만 열린다면 데이터는 쏟아져 나온다.
더 나은 사회과학 연구를 위한 제언
이제 소규모 커뮤니티 조사를 넘어, 대규모 일반 사회 조사에서도 성소수자를 포괄할 때다. 최근 인구주택총조사 시험조사에 동성 커플 항목을 포함한 데 대한 일각의 반발에 대해, 국가데이터처가 “조사 전반의 정확성을 더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일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7). 이는 성소수자를 데이터에 포함하는 일이 단순한 ‘포용’이나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을 넘어, 변화하는 가족과 사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포착해야 할 통계의 과학적 책무임을 국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위해, 다음과 같은 변화를 제안한다.
첫째,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 문항을 추가하는 것은 가장 간단하고 쉬운 출발이다. 이호림 등8)의 제안처럼 성별 문항은 ‘출생 시 지정 성별(Sex assigned at birth)’과 현재의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구분하는 ‘2단계 접근’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성적지향의 경우, 일반 성인 대상 조사에서는 ‘성적 정체성’을 묻는 것을 기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는 섹슈얼리티를 하나의 사회 분석의 범주로 삼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토대다.
둘째, 가구 구성 문항의 유연함은 가족의 실체를 드러낸다. ‘혼인 상태’ 질문이 법적 결혼에만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동거 및 파트너 관계로 확장된다면, 우리는 성소수자 커플뿐 아니라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기타’나 ‘동거’로 뭉뚱그려졌던 관계들을 ‘생활 동반자’나 ‘파트너’라는 구체적 언어로 호명할 때, 비로소 데이터는 현실을 반영할 힘을 얻는다.
셋째, 윤리적 민감성은 연구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안전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생명윤리위원회(IRB)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연구 수행에 과도한 요건을 요구하거나, 이들을 막연히 ‘취약한 대상’으로 규정하여 연구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9) 그러나 ‘보호’라는 명분이 오히려 이들의 목소리를 삭제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다행히 최근 성소수자 연구가 축적되면서 이러한 관행적인 장벽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진정한 연구 윤리는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공론장을 설계하는 것이다.
“기타, 구체적으로 기술하시오(Other, Please Specify).” 이제 사회과학은 이 질문을 넘어 더 넓은 세계와 만나야 할 때이다.
📝 정성조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수료)
| 사회학 연구자. 성소수자의 차별 경험과 건강 불평등,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해왔고, 현재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demonicsj@gmail.com
1) Kristen Schilt, Tey Meadow, and D’Lane Compton. 2018. “Introduction: Queer Work in a Straight Discipline.” p.3. in Other, Please Specify: Queer Methods in Sociology, edited by D’Lane Compton, Tey Meadow, and Kristen Schil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 한겨레. 2023.1.26. ““성소수자 규모 파악해야”…인권위 권고 모두 ‘불수용’한 정부.”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77025.html
3) Statistics Canada. 2022. “Canada is the first country to provide census data on transgender and non-binary people. https://www150.statcan.gc.ca/n1/daily-quotidien/220427/dq220427b-eng.htm
4) 行政院. 2022. 「我國多元性別(LGBTI)者生活狀況調查」 研究案.
5) 한겨레. 2025.10.22. “인구총조사에 ‘동성 배우자’ 등록 가능…성소수자단체
“역사적 결정""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4787.html
6) Ipsos. 2025. IPSOS LGBT+ Pride Report 2025: A 26-Country Ipsos Global Advisor Survey. https://www.ipsos.com/sites/default/files/ct/news/documents/2025-06/ipsos-pride-report-2025.pdf
7) 국가데이터처. 2025. 2025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성 배우자 입력이 가능한 부분에 대한 설명자료. https://mods.go.kr/board.es?mid=a10304020000&bid=11534&tag=&act=view&list_no=438966&ref_bid=
8) 이호림, 이혜민, 주승섭, 김란영, 엄윤정, 김승섭. 2022. “국가 대표성 있는 설문 조사에서의 성소수자 정체성 측정 필요성: 국내외 현황 검토와 측정 문항 제안.” 『비판사회정책』 74: 175-208.
9) 권수빈, 김선기, 정성조, 차현재, 이상길. 2023. “‘취약성’의 제도화?: 인문사회 분야 IRB의 ‘취약한 대상’ 연구 심의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쟁점.” 『사회과학연구』 34(4): 133-159.
“기타,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
사회과학 연구자에게 ‘기타(Other)’는 코딩하기 번거로운 잔여 범주이거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미미한 수치일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라는 이 건조한 지시어는 남성/여성, 기혼/미혼이라는 견고한 객관식 성벽을 비집고 존재를 증명할 유일한 해방구다.
우리는 강의실에서 타당도와 신뢰도, 그리고 표본의 대표성이야말로 양적 연구의 생명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성소수자와 같이 숨겨진 모집단을 마주한 현장에서 교과서의 매끈한 방법론은 종종 길을 잃는다. 설문 문항이 포착하지 못한 삶은 데이터로 변환되지 못한 채 증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방법론의 실패가 아니라, 데이터가 행사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동명의 책 『기타, 구체적으로 서술하시오(Other, Please Specify)』를 엮은 사회학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통계의 퀴어링(Queering)을 제안한다. 통계의 퀴어링은 성소수자를 단순히 연구 표본에 끼워 넣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주체를 유동적인 것으로 보는 퀴어 이론의 통찰을, 범주를 명확히 해야 하는 조사 방법과 엮어내는 복잡하고 필연적인 작업”1)이다. 즉, 우리가 배운 사회과학의 도구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도구가 놓치고 있던 ‘유동적인 삶’을 포착하도록 도구를 다시 벼리는 인식론적 도전이다.
‘정상성’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는 데이터
그렇다면 이 작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흔히 퀴어 연구는 질적 연구의 전유물로 여겨지나, 역설적으로 성소수자 인권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균열은 가장 ‘딱딱한’ 숫자들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심리학자 에블린 후커는 당대 가장 권위 있는 심리 검사법을 역이용했다. 그녀는 전문가들에게 피험자의 성적 지향을 가린 채 분석하게 했다. 당시로서는 놀랍게도 전문가들조차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를 구분하지 못했다. 동성애자의 정신적 문제는 병리가 아닌 사회적 낙인 때문임이 ‘객관적 수치’로 입증된 순간이었다. 그녀의 데이터는 훗날 미국 정신의학회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앨프리드 킨제이의 접근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물학자였던 그는 도덕적 판단 대신 곤충을 분류하듯 인간의 성 행동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는 1만 명 이상에게 수백 개의 질문을 던져 섹슈얼리티가 이분법이 아닌 0에서 6까지의 연속적 스펙트럼 위에 존재함을 시각화했다. 그의 보고서는 ‘비정상’으로 치부되던 욕망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폭로하며 정상성의 기준을 뒤흔들었다. 이처럼 ‘통계의 퀴어링’은 시혜적으로 보기를 추가하는 차원이 아니다. 주류 방법론이 은폐해 온 편견을 가장 엄밀한 연구 설계로 타격하는 작업이다.
데이터가 없으면 정책도 없다
한국의 국가 승인 통계에서 성소수자는 ‘0명’이다. 성소수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국가가 세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전국의 개인 및 가구 대상 국가 승인 통계 129건 중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묻는 조사는 전무했다. 특정 인구의 누락은 단순한 정보 부재를 넘어, ‘데이터가 없으니 문제가 없고, 문제가 없으니 정책도 필요 없다’는 정책적 삭제의 악순환을 낳는다.
이러한 통계적 삭제는 ‘증거 기반 정책(Evidence-based Policy)’의 경로를 왜곡한다. 분모가 오직 이성애자/시스젠더로만 상정된 데이터 위에서는 아무리 합리적인 정책도 이성애 규범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성소수자의 빈곤, 노동, 건강 등 삶의 조건이 파악되지 않는 한, 관련 법제도는 영원히 ‘근거 부족’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
지난 202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통계청 등 정부 부처에 관련 항목 신설을 권고했으나, 정부는 ‘사회적 합의’나 ‘조사의 어려움’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2) 우리가 주저하는 사이 국제사회는 이미 성소수자를 데이터로 호명하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주요국은 국가 단위 조사에서 성소수자 문항을 필수적으로 포함한다. 특히 영국과 캐나다는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 국민에게 성별정체성을 묻기 시작했고3), 대만은 만 명이 넘는 대규모 성소수자 생활실태조사를 정부 차원에서 실시해 정책 근거를 마련했다.4) 다소 늦었지만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가 올해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거하는 동성 커플을 포함하도록 한 결정은 반가운 균열이다.5)
성소수자는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 연구는 불모지를 개척한 연구자들과 기꺼이 입을 연 응답자들이 쌓아 올린 기록이다. 2004년 <한국 레즈비언 인권 실태조사(n=561)>와 2006년 <성전환자 인권 실태조사(n=116)> 등 소규모 커뮤니티 조사에서 시작된 흐름은, 2014년 국가인권위 실태조사(n=1,148)와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n=3,159)>를 기점으로 천 단위 표본을 확보했다. 이후 2016년 <한국 성인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 건강 연구(n=2,341)>, 2021년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n=3,911)>, 2025년 <성소수자의 노동권 및 차별에 관한 연구(n=2,639)> 등 다양한 주제로 수행된 최근 연구들은 이들이 더 이상 ‘측정 불가능한’ 소수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의 대상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이전까지 국가데이터처을 비롯한 정부 기관은 성소수자 관련 항목 신설을 거부하며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민감 정보’라 문항에 포함하기 어렵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숨겨 ‘과소 표집’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실제 조사 현장에서 내가 목격한 풍경은 정반대다. 성소수자들은 숨거나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처럼 보였다.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학계와 언론은 묻는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를 모았습니까?” 이 질문에는 한국 사회에 퀴어가 극소수일 것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다. 그러나 한국 인구의 약 5%가 성소수자라는 최근 추정치를 대입해 보면6), 우리 사회에는 광역시 하나에 맞먹는 약 250만 명의 성소수자가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숫자를 직시해야 한다. 이들은 이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사회와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준비되지 않은 건 그들의 ‘입’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담을 그릇을 마련하지 못한 우리의 ‘설문지’일 뿐이다. 안전한 공론장만 열린다면 데이터는 쏟아져 나온다.
더 나은 사회과학 연구를 위한 제언
이제 소규모 커뮤니티 조사를 넘어, 대규모 일반 사회 조사에서도 성소수자를 포괄할 때다. 최근 인구주택총조사 시험조사에 동성 커플 항목을 포함한 데 대한 일각의 반발에 대해, 국가데이터처가 “조사 전반의 정확성을 더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일축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7). 이는 성소수자를 데이터에 포함하는 일이 단순한 ‘포용’이나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을 넘어, 변화하는 가족과 사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포착해야 할 통계의 과학적 책무임을 국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한 데이터를 위해, 다음과 같은 변화를 제안한다.
첫째,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 문항을 추가하는 것은 가장 간단하고 쉬운 출발이다. 이호림 등8)의 제안처럼 성별 문항은 ‘출생 시 지정 성별(Sex assigned at birth)’과 현재의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을 구분하는 ‘2단계 접근’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성적지향의 경우, 일반 성인 대상 조사에서는 ‘성적 정체성’을 묻는 것을 기본으로 삼을 수 있다. 이는 섹슈얼리티를 하나의 사회 분석의 범주로 삼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토대다.
둘째, 가구 구성 문항의 유연함은 가족의 실체를 드러낸다. ‘혼인 상태’ 질문이 법적 결혼에만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동거 및 파트너 관계로 확장된다면, 우리는 성소수자 커플뿐 아니라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기타’나 ‘동거’로 뭉뚱그려졌던 관계들을 ‘생활 동반자’나 ‘파트너’라는 구체적 언어로 호명할 때, 비로소 데이터는 현실을 반영할 힘을 얻는다.
셋째, 윤리적 민감성은 연구를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안전장치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생명윤리위원회(IRB)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연구 수행에 과도한 요건을 요구하거나, 이들을 막연히 ‘취약한 대상’으로 규정하여 연구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9) 그러나 ‘보호’라는 명분이 오히려 이들의 목소리를 삭제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 다행히 최근 성소수자 연구가 축적되면서 이러한 관행적인 장벽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진정한 연구 윤리는 존재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안전하게 자신을 드러낼 공론장을 설계하는 것이다.
“기타, 구체적으로 기술하시오(Other, Please Specify).” 이제 사회과학은 이 질문을 넘어 더 넓은 세계와 만나야 할 때이다.
📝 정성조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박사수료)
| 사회학 연구자. 성소수자의 차별 경험과 건강 불평등,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해왔고, 현재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demonicsj@gmail.com
1) Kristen Schilt, Tey Meadow, and D’Lane Compton. 2018. “Introduction: Queer Work in a Straight Discipline.” p.3. in Other, Please Specify: Queer Methods in Sociology, edited by D’Lane Compton, Tey Meadow, and Kristen Schil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 한겨레. 2023.1.26. ““성소수자 규모 파악해야”…인권위 권고 모두 ‘불수용’한 정부.”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77025.html
3) Statistics Canada. 2022. “Canada is the first country to provide census data on transgender and non-binary people. https://www150.statcan.gc.ca/n1/daily-quotidien/220427/dq220427b-eng.htm
4) 行政院. 2022. 「我國多元性別(LGBTI)者生活狀況調查」 研究案.
5) 한겨레. 2025.10.22. “인구총조사에 ‘동성 배우자’ 등록 가능…성소수자단체
“역사적 결정""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4787.html
6) Ipsos. 2025. IPSOS LGBT+ Pride Report 2025: A 26-Country Ipsos Global Advisor Survey. https://www.ipsos.com/sites/default/files/ct/news/documents/2025-06/ipsos-pride-report-2025.pdf
7) 국가데이터처. 2025. 2025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동성 배우자 입력이 가능한 부분에 대한 설명자료. https://mods.go.kr/board.es?mid=a10304020000&bid=11534&tag=&act=view&list_no=438966&ref_bid=
8) 이호림, 이혜민, 주승섭, 김란영, 엄윤정, 김승섭. 2022. “국가 대표성 있는 설문 조사에서의 성소수자 정체성 측정 필요성: 국내외 현황 검토와 측정 문항 제안.” 『비판사회정책』 74: 175-208.
9) 권수빈, 김선기, 정성조, 차현재, 이상길. 2023. “‘취약성’의 제도화?: 인문사회 분야 IRB의 ‘취약한 대상’ 연구 심의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쟁점.” 『사회과학연구』 34(4): 133-159.